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불과 검과 전쟁을 주러 왔음을 알지 못한다.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살고 있다면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할 것이며 두 사람은 세 사람을 반대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할 것이며 아들은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다. 그들은 각자 홀로 서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눈으로 보지 못한 것,  귀로 듣지 못한 것,  손으로 만져보지 못한 것,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거의 죽어 있는 상태라면 평화는 가능하다. 거기에 전쟁이나 갈등은 없을 테지만 삶 또한 없을 것이다. 묘지의 침묵과도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가치가 없다. 차라리 전쟁이 있는 게 나을 것이다. 전쟁이 있으면 그대들은 생기와 활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대가 자기 존재 내면에 중심을 둔 생기와 활력을 가질 때 완전히 다른 차원의 평화가 존재한다. 그대가 자기 자신을 알았을 때, 그대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불꽃이 타올라 그대가 어둠 속에 있지 않을 때 찾아오는 평화이다. 거기에는 넘치는 생명력과 깊은 침묵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죽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속하는 것이다. 묘지의 침묵이 아니다. 전쟁은 나쁜 것이고 미움도 나쁜 것이다. 그것들은 세상의 악마이며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질병은 나쁜 것이고 건강은 좋은 것이다. 질병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죽은 자는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죽은 몸은 부패할 수 있지만 병들 수는 없다. 그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의 노력은 죽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된다. 거기엔 전쟁과  질병과 미움은 없을 것이지만 또한 생명도 없다.  그런 형태의 평화는 쓸모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애써왔지만 그들의 자세는 단지 소극적인 것이다. "만일 전쟁이 그친다면 모든 것은 좋아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버트란트 러셀 같은 뛰어난 철학자들도 "만일 전쟁이 그친다면 모든 것은 좋아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대의 내면에 전쟁이 없다면 외부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대가 그대 내면의 전쟁에서 싸워 승리한다면 바깥의 전쟁은 그칠 것이다. 그대가 자기 자신을 정복한다면 다른 사람과의 싸움은 즉시 그칠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란  단지 내면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가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불편함으로  고통을 겪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내적으로 긴장되어 있을 때 그대는 이미 누군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구실은 무엇이라도 좋다. 그 구실이 부당할지라도 그대는 그대의  고용인이든 아내든 아이들이든, 누구에게나 덤벼들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가진 내적 갈등과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하는가? 그대는 다른 것에 그 책임을 돌리고,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금 화를 낼 수 있고, 분노와 폭력을 행사하므로 그대는 이완되고 기분이 전환된다. 물론 일시적인 것이다. 내부는 변화되지 않았다. 갈등은 다시 쌓이고,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내일이면 분노와 미움은 쌓이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투사한다. 남과 싸우는 것은 계속 자신의 내면에 쓰레기를 쌓아 올리고 있고, 또 그것을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 자아 정복자는 내적 갈등이 없다. 전쟁은 끝났다. 내적으로 하나이다. 거기에 둘은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갈등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누구하고도 싸우지 않는다. 내적인 갈등을 피하는 것은 마음의 속임수이다. 내적인 갈등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대를 비롯한 모든 개개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선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이런 이미지 없이 살기가 어렵다. 환상은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 한, 살기 위해서는 환상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아주 추하고 사악하고 악마와 같다고 생각하고-사실 이것이 진실이다-그 이미지를 내면에 간직한다면 그대는 바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없다. 모든 자신감을 상실할 것이며, 사랑할 수 조차 없다는 사실로 인해 자기 혐오감에 사로잡하게 된다. 흑암은 짙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다. 심한 열등감에 짓눌려 자신이 아주 나쁘고 사악한 존재라는 느낌을 버리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그것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오쇼 라즈니쉬)

 Jesus said, “I have cast fire upon the world, and look, I’m guarding it until blazes.”
예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나는 이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보라. 이것이 타오를 때까지 내가 지키고 있노라.”

((Didymos Judas Thomas recorded. 10)

천사들의 숨 소리는 훨씬 가깝게 들리거나, 어깨까지 닿을 만큼 천사들이 다가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분명히, 천사는 예지하는 능력을 가졌고, 긴장한 생명의 속을 뚫어 볼 수 있는 불타는 시선을 나타내어 잠시 동안 비상한 치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으며, 시간의 앞 뒤 좌 우의 모든 방향을 드러나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천사들의 천진한 웃음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 천사들이 주는 부드러운 격려같은 것 말이다. 어떤 것이든 보이는 바로 그 앞에서 잘 하고 있다는 간결한 의사 표시를 나누는 감동을 받는 것 말이다. 긴장하지 않아도 될 거였다. 그럴 때엔. 그런 밝은 천사들 앞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