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내 존재가 부정되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스스로 너무 초라해 보이고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는데 의외로 마음이 덤덤했습니다. 화가 나거나 내 스스로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주 속상했을 일이 그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누가 나를 아주 미워해도 “그래, 나는 무시당해도 싸.. 난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외모를 봐도 그렇고, 능력이나 성품을 봐도 잘난 구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또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나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속상한 일을 당했음에도 덤덤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바로 이어서 떠오른 생각이 “그런 나를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지금 받은 아픔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에게 부어졌을 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닌 것이죠.

그 순간 기쁨과 감사의 마음도 있었지만 가장 큰 생각은 “참 다행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 사랑을 누리고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참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의 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없으면…

나는 한순간도 못 삽니다.

주님의 생명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일 때 나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정한 존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신 후의 내 삶은 그 전과는 다른 삶이 되었습니다. 내 삶은 나로 인해 평가받거나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의 주인인 그리스도로 인해 인정된다는 것이 정말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을 테니까요.

“온 땅의 주인”이란 찬양의 가사의 내용처럼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 잠깐 일어났다 사라지는 바다에 이는 파도, 눈앞을 가렸다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는 안개같이 초라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나를 붙드시고, 내 부르짖음 들으시고, 날 귀하다 하셨다는 고백처럼 아무것도 아닌 내가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주님으로 인해 존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하여 나는 죽고, 또 그 부활하심으로 나를 다시 살게 하신 그 은혜를 깨닫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데,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나의 만족을 위해, 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내가 되려고 하기보다 내게 가장 좋은 것 주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안전하고 복된 것임을 깨닫고 그분께 내 삶을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변화된 내 삶에서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한 가지 사라지지 않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주님께 내 삶을 내어드립니다, 나를 드립니다…’라고 많이 고백하긴 했는데 내 삶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이었죠.

내가 주인이 아니니까 내 유익을 위해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순간순간 어떤 것이 더 나를 위한 일인지 고민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나의 유익이나 필요만을 더 생각하게 되는 삶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이 결코 거짓말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자꾸 내가 주인이었던 옛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학교 수업시간에 들었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온전히 드려지는 하루가 없이는 온전히 드려지는 나의 삶은 있을 수가 없다”라는 맥락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수업시간을 생각하며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내 삶을 드립니다”라는 고백이 뭔가 추상적이고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그 어떤 것을 드린다는 고백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 삶을 드립니다”라는 고백이 실제 내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내 삶을 드린다는 아주 큰 고백을 하기에 앞서 나의 지금 이 시간, 오늘 하루를 주께 드리기 원합니다. 이렇게 지나는 나의 모든 하루하루를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 나의 모든 날들도 주의 것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곡을 만들었을 때 가장 중요하게 담고 싶었던 마음은 “아무것도 아닌 나”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새롭게 된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하나님께 아주 소중한 존재인 나” 인 것 같습니다.

종종 나를 내 삶의 주인으로 여기는 관점에서는 내 삶이 내 마음대로 되어가는 것 같지 않아도, 나의 실제적 주인이신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며, 또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모든 상황이 너무 잘 풀려가는 그 때에도 내가 잘한 것 없고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기 원합니다.